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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이해하는 시간

비처럼, 사랑도 거리를 두면 아름답다

by 유니채콩 2025. 10. 15.

며칠째 비가 내립니다.
아침 공기가 유난히 눅눅하고,
창문에 맺힌 물방울들이 천천히 흘러내립니다.
커피잔을 손에 쥐고 창밖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의 관계도 비와 참 많이 닮았구나,
비를 ‘보는 사람’과 ‘맞는 사람’의 차이처럼요.

비를 바라보는 건 마음으로 느끼는 일입니다.
창가에 앉아 내리는 비를 보고 있으면
묘하게 감정이 흔들립니다.
그 소리가 위로처럼 들릴 때도 있고,
어쩔 땐 이유 없이 마음 한켠이 허전해지기도 하죠.
하지만 그건 멀리서 바라볼 때의 이야기예요.
유리창 하나 사이를 두고 비를 보는 것과
온몸으로 맞는 건 전혀 다릅니다.

비를 맞는다는 건 현실을 통과하는 일입니다.
바람의 차가움, 젖은 옷의 무게,
발끝으로 스며드는 축축함까지—
그 모든 걸 몸으로 겪어야 알 수 있죠.
사랑도 그렇습니다.
멀리서 바라볼 때는 언제나 예쁘고 낭만적이지만,
막상 그 안으로 들어가면
설렘, 불안, 다툼, 오해 같은 무게가 함께 따라옵니다.
사랑은 비처럼 예측할 수 없고,
때로는 흠뻑 젖게 하는 감정이니까요.

하지만 비를 바라보는 사람도
한 번쯤은 그 비를 맞아본 사람입니다.
젖은 옷의 불편함을 알고,
몸을 파고드는 냉기를 알아서
이젠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바라보는 걸 택한 거예요.
그건 도망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이죠.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다친 사람들은
예전처럼 무작정 뛰어들기보다
조금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법을 배웁니다.
그렇다고 사랑이 식은 건 아니에요.
오히려 그 거리 속에서
더 조용하고 깊은 사랑이 자라납니다.
함께 있지 않아도 마음이 닿는 순간이 있고,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사랑이 있죠.

비를 보는 사람은 풍경을 기억합니다.
“어제 비가 왔었지.” 하고 지나가겠죠.
하지만 비를 맞은 사람은 온몸으로 날씨를 기억합니다.
차가웠던 공기, 우산에 떨어지는 소리,
그리고 비가 그친 뒤 햇살의 냄새까지요.

사랑도 똑같아요.
감정으로만 느낀 사랑은 아름답지만,
바람 불면 흩어지는 사랑이에요.
함께 웃고, 다투고, 오해하고,
다시 손을 잡는 그 시간 속에서
사랑은 ‘느낌’이 아닌 ‘관계’가 됩니다.
그래서 진짜 사랑은 비처럼 흩날리는 감정이 아니라,
몸으로 맞으며 배우는 감정이에요.

비를 바라보는 사람은 사랑을 영화처럼 보고,
비를 맞는 사람은 그 사랑을 살아냅니다.
비를 보는 사람은 “예쁘다”고 말하지만,
비를 맞는 사람은 “춥지만 좋았다”고 말하죠.
바라보는 사랑은 장면으로 남지만,
겪어낸 사랑은 인생으로 남습니다.

가끔은 그런 생각도 들어요.
비를 바라보는 사람도,
언젠가는 비를 맞았던 사람이라는 걸요.
그 기억이 차가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그때의 감정을 소중히 간직하기 위해
조금 거리를 둔 걸지도 모릅니다.
사랑도 그렇습니다.
감정만으로는 닿을 수 없는 현실의 무게를 알기에,
우린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조용히, 그러나 더 깊이 사랑을 배워갑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비가 다시 내릴 때면
우린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어
다시 한 번 젖어보기로 합니다.
이번엔 예전보다 천천히 걸으며,
비가 주는 온도를 기억하기 위해서요.
그게 아마도,
비를 바라보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가장 다정한 용기일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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