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드라마 리뷰 대신, 최근 몇 년간 한국 좀비 드라마(K-좀비)의 변화를 정리해보려 해요. 개인적으로 《킹덤》(2019, 넷플릭스)부터 《스위트홈》(2020, 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2022, 넷플릭스), 《해피니스》(2021, tvN), 그리고 《뉴토피아》(2025, 쿠팡플레이)까지 챙겨봤는데, 작품마다 색깔이 달라서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꽤 재미있거든요.
단순히 피 튀기고 무서운 장르로만 소비되던 좀비물이, 이제는 사극·청춘·로맨스까지 아우르며 변주되고 있다는 게 흥미로웠습니다.
사극에서 출발한 충격
K-좀비의 본격적인 시작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킹덤》(2019)이었습니다.
조선시대와 좀비라는 조합은 당시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파격이었죠. 굶주림, 역병, 권력 다툼이 얽혀 만들어낸 좀비 사태는 단순히 괴물의 습격을 넘어서 사회적 불평등과 권력의 민낯을 드러내는 장치였습니다.
이 작품 덕분에 K-좀비라는 이름이 전 세계에 알려졌고, “좀비=공포물”이라는 공식을 깨고 좀비=사회적 은유로 확장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해외 팬들이 한국 드라마의 새로운 해석에 놀라워했던 것도 이 때문이죠.
아파트와 교실, 익숙한 공간으로
사극이라는 낯선 무대에서 출발한 K-좀비는 곧 우리에게 익숙한 공간으로 내려왔습니다.
《스위트홈》(2020)은 아파트, 《지금 우리 학교는》(2022)은 교실을 배경으로 삼았죠.
- 《스위트홈》은 정통 좀비물보다는 괴수물에 가까웠습니다. 욕망이 괴물화된다는 설정 덕분에 감염 구조는 다르지만, “아파트에 고립된 주민들이 괴물과 맞선다”는 구도는 좀비물의 변주처럼 보였어요. 다양한 괴물 디자인과 긴장감 덕분에 몰입도가 컸습니다.
- 《지금 우리 학교는》은 훨씬 더 직접적으로 좀비 장르를 끌어왔습니다. 학교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감염은 누구나 익숙한 장소와 겹치며 공포를 극대화했죠. 하지만 단순히 무섭게만 가지 않고 우정·첫사랑·배신 같은 청소년 서사를 담아 전 세계 젊은 층을 사로잡았습니다.
즉, 좀비물이 “낯선 사극”에서 시작했다면, 이제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상적 공간으로 옮겨와 친근해진 셈이에요.
현실과 맞닿은 감염병, 그리고 로맨스
조금 더 현실에 가까운 버전은 《해피니스》(2021, tvN)입니다. 신축 아파트 단지를 배경으로 ‘광인병’이라는 신종 바이러스 감염자가 등장하는데, 사실상 변종 좀비물이라 할 수 있죠. 팬데믹 이후 만들어져서 그런지, 단순히 무서움보다 격리·불신·생존 같은 현실적인 문제가 크게 다가왔습니다.
여기에 윤새봄(한효주)과 정이현(박형식)의 관계가 중심에 자리해 긴장 속에서도 따뜻한 로맨스가 살아 있었어요. 이 작품은 “좀비물이 단순한 괴담이 아니라 사회적 불안을 반영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최근 공개된 《뉴토피아》(2025, 쿠팡플레이)는 아예 장르의 경계를 허물었습니다. 군인 남자친구와 곰신 여자친구가 좀비 아포칼립스 속에서 서로를 찾아가는 이야기인데, 초반은 로맨틱 코미디처럼 웃음을 줬죠. 지수와 박정민이 티격태격하는 장면은 데이트 드라마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생존극의 무게가 더해지면서 웃음과 눈물이 공존하는 드라마로 완성되었어요.
왜 이렇게 달라졌을까?
그렇다면 왜 이렇게 달라졌을까요? 가장 큰 이유는 OTT 플랫폼들의 치열한 경쟁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넷플릭스, 쿠팡플레이, 디즈니+ 같은 글로벌 서비스들이 앞다투어 한국 콘텐츠를 선보이면서, 단순히 무섭기만 한 공포물로는 더 이상 시청자의 눈길을 끌기 어려워졌습니다. 여기에 MZ세대의 취향 변화도 한몫했습니다. 요즘은 단순한 자극보다 작품 속에서 우정이나 로맨스, 성장 같은 감정을 발견하는 걸 더 선호하기 때문에, 좀비물도 자연스럽게 그 방향으로 변주된 것이죠. 마지막으로 한국 드라마 특성 역시 빼놓을 수 없습니다. 원래 한국 드라마는 멜로와 코미디, 스릴러를 한 작품 안에 버무리는 데 능숙한데, 이런 장르 믹스가 좀비물에도 그대로 적용되면서 더욱 다채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앞으로의 K-좀비는?
앞으로의 K-좀비는 단순히 포화 상태로 끝나는 장르가 아니라, 여전히 매력적인 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킹덤》이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냈다면, 《스위트홈》은 괴수적 상상력을 보여주었고, 《지금 우리 학교는》은 청춘 성장 드라마로 변주되었죠. 또 《해피니스》는 팬데믹 시대의 불안을 사실적으로 반영했고, 《뉴토피아》는 로맨스를 중심에 두며 좀비물을 새로운 시도로 확장했습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작품들이 각기 다른 색깔을 보여준 것만 보아도, K-좀비가 얼마나 다양한 방향으로 변주될 수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좀비물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좀비라는 소재를 어떤 맥락 위에 얹느냐입니다. 정치 풍자가 될 수도 있고, 사회 문제를 드러내는 장치가 될 수도 있으며, 로맨스와 청춘극의 배경이 될 수도 있는 만큼, 앞으로의 K-좀비는 여전히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마무리
돌아보면 K-좀비는 처음엔 무섭기만 한 장르였지만, 이제는 훨씬 다양한 이야기를 담는 그릇이 되었습니다. 저는 《킹덤》 같은 묵직한 메시지가 있는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지만, 《뉴토피아》처럼 신선한 시도도 반가웠어요.
앞으로도 한국 좀비 드라마는 세계적인 K-좀비 흐름 속에서 새로운 변주를 보여줄 거라 기대합니다. 결국 좀비물은 이제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사람과 사회를 비추는 거울로 진화하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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