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려조 이야기

한 마리 앵무새가 내게 알려준 교감의 시작

by 유니채콩 2025. 10. 16.

앵무새를 처음 키울 때 많은 분들이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한 마리부터 키워야 교감이 깊어져요.”
그 말을 듣고 저도 한 생명과 온전히 마주해보기로 했어요.
그렇게 제 곁에는 ‘윌리’라는 이름의 퀘이커 앵무가 찾아왔습니다.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크게 느껴지던 작은 새,
가정 브리더님께서 정성껏 키워 보내주신 덕분에
처음 만난 날부터 윌리는 건강하고 눈빛이 반짝였어요.
손 위에서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낯선 공간에서도 금세 저를 믿고 품에 안기던 그 순간—
그때 저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생명을 만난 기분이었어요.

매일이 새로웠어요.
윌리가 낯선 소리에 고개를 갸웃하고,
처음으로 제 말을 흉내 냈던 날은 아직도 또렷이 기억납니다.
그때 저는 몰랐어요.
이 작고 영리한 생명이 내 하루를 얼마나 깊이 물들일지,
내 마음의 온도를 어떻게 바꿔놓을지를요.

자고있는 아기퀘이커

한 마리로 시작된 깊은 교감

윌리는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존재가 되었어요.
아침이면 제일 먼저 인사를 건네고,
밤에는 제가 불을 끄면 조용히 제 옆에서 깃털을 다듬었죠.
그렇게 매일 함께하다 보니, 우리는 서로의 기분을 읽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제가 힘든 날에는 윌리가 조용히 다가와 부리를 비비며 위로했고,
제가 웃을 땐 신나게 날갯짓을 하며 따라 웃었어요.
언제부턴가 말보다 눈빛으로 대화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죠.

하지만 교감이 깊어질수록 그 안에는 그림자도 함께 생겼습니다.
제가 잠시 다른 방에 가거나, 화장실에 다녀오기만 해도
윌리는 불안한 듯 날개를 퍼덕이며 절 찾았어요.
그 모습이 사랑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내가 너무 한 존재에게만 의지하게 만든 걸까?’
그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어요.
한 마리로 시작한 교감이 너무 진해져서,
오히려 불안의 씨앗이 된 건 아닐까 하고요.

사랑이 깊어질수록 배우게 되는 균형

앵무새는 무리 생활을 하는 사회적인 동물이에요.
혼자 있는 걸 불안해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윌리처럼 어릴 때부터 사람 곁에서만 자라면
집사를 동료이자 가족으로 각인하게 됩니다.
그럴 때 나타나는 것이 바로 분리불안이에요.

저는 그 사실을 윌리에게서 배웠습니다.
그 불안은 단순한 외로움이 아니라,
“엄마, 당신이 내 무리야. 당신이 없으면 세상이 조용해져요.”
라는 마음의 표현이었어요.

그래서 요즘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함께하려 해요.
윌리가 절 찾을 때 억지로 떨어뜨려놓지 않고,
“엄마 금방 와~” 하고 부드럽게 말한 뒤
꼭 다시 돌아오는 걸 반복해 알려줍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버려짐’이 아니라
‘곧 다시 만날 준비 시간’이라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가끔은 윙키와 함께 두어
서로의 존재에서 안정감을 배우게 하기도 해요.
그 작은 변화들이 윌리의 세상을 조금씩 넓혀주길 바라며,
오늘도 조용히 그 곁을 지켜봅니다.

한 마리로 시작된 사랑, 그 안의 기적

윌리를 통해 저는 ‘사랑의 깊이’보다
‘사랑의 균형’을 배웠어요.
하나의 생명이 나를 전적으로 믿고 의지할 때,
그 믿음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그건 사람 사이의 관계보다 더 진실하게 다가왔습니다.

사랑이란 결국 ‘함께 자라가는 과정’이라는 걸,
윌리가 제게 알려줬어요.
이 아이는 제게 단순한 반려조가 아니라
하루의 감정, 계절의 변화, 마음의 온도를 함께 나누는 존재가 되었죠.

한 마리로 시작된 교감은 이제 둘의 세상이 되었고,
그 안에는 빛과 그림자가 함께 존재하지만,
그 모든 것이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라는 걸 배워가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오늘도 윌리에게 속삭입니다.
“우리, 천천히 오래 가자.
너의 세상이 더 넓어질 수 있도록,
엄마가 언제나 곁에 있을게.”